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사라짐

마구 떠오르던 생각이,
순간
순식간에
책장을 덮는
그 순간

탁,

사라진다.
사라졌다.
사라져간다.

2010년 11월 5일 금요일

여행이 부럽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도, 부럽지가 않다. 왠지 부러워해줘야 할 것 같은데. 부럽지가 않아. 그가 그곳에 가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얻어오는지 그건 알고 싶지만, 그저 사진찍기에 급급하고 먹으러 다니고 사진포인트나 맛집을 알아오는 것은 부럽지 않다.

그랬다. 만연해있는 여행 - 특히 국내 여행은, 맛있는 것을 먹고 예쁘거나 멋진 사진을 찍는 것. 그게 전부라고 나는 오해를 하고 있다. 내가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 내일 지리산을 올라가려구요, 라디오 사연.

이건 마치, 내게 남은 건 딱 그거다. 누군가가 나 이 책을 읽었어, 라고 했을 때 나도 읽었어. 하지만 기억이 안나. 라는 것과 같다. 나도 지리산 갔다왔어. 물론 기억은 나. 하지만.. 그냥 딱 그런 느낌이야. 걷고 또 걸었지만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물집이 잡히도록 걸었지만. 노고단으로 올라갔었을거야. 그래서 장터목?에서 자고 어디선가 점심을 먹었는데, 날이 좀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가 탱탱해 보이는 30대 아저씨가 민소매 옷을 입고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걸어서 산장에 도착했어. 혼자 무언가를 먹길래 어머니가 김치를 나눠주었지. 10여걸음 떨어진 식탁에서 불을 피우던 어떤 여성일행이 있었는데, 버너를 켜다가 실수로 불을 붙여버렸어. 그러자 그 민소매 아저씨가 또 성큼성큼 가서 수건으로 불을 끄더라고. 응, 그랬지. 지리산에서 내려올 때는 너덜길로 내려왔어. 딱 우리 6~8명 일행만 너덜길을 택했었어. 그해 여름에 장마통에 난리가 나서 안그래도 험한 지름길이었는데 낙엽이 엄청 많아서 더욱더 미끄러웠어. 새벽에 올라갈 때 화장실 가까이에 있는 건물에서 라면을 끓여먹었어. 첫번째로 점심을 먹을 때는 시간이 조금 늦어서 공사중이었던 산장에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우리끼리 오붓하게 작은 컨테이너박스를 전세내서 맛있게 먹었었어. 그랬어. 난 지리산 갔다왔어. 종주를 했어. 이 모든게 생생하지만, 아니 생생한 정도는 아니고 이런저런걸 기억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하는 과장된 말버릇처럼, 나도 종주를 했어!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같은 기분따위는 들지 않는거지.

많이 걸었고, 즐겁고 힘들게 지리산 종주를 했다. 추억이기도 하고 행복이기도 하지.

내가 다닌 많은 곳,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한 많은 것들, 함께 먹은 밥 함께 마신 술. 어쩐지 눈물이 나. 부모님 생각을 하면 좀 마음이.. 애틋? 그런 느낌이 든다. 무지무지무지무지무지 감사하거든.

난 어려서부터 늙은이가 갖는 여유가 좋았는데

내가 말했다. 난 어려서부터 늙은이가 갖는 여유가 좋았는데,

그랬다. 꿈이라거나 희망사항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비교적 어릴 때 부터 - 언제부터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 죽음이라던가 늙음이라던가, 생각했다. 영혼이라던가 하는 오컬트, 귀신, 사후세계 같은 것과 비슷한 정도의 관심으로.

다 산 자의 여유. 오히려 어릴 때 뭣도 모르고 철도 모를 때, 그런 여유가 있었다. 인생 다 산 사람 같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나도 화도 내고 승질도 부리고 말도 많이 하고 사람처럼 굴고 있지만, 난 여전히 그립다.

매일매일 소일하며 시간 보내는 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사무실에 앉아서 이런생각 저런생각도 하고.. 물론 바쁠 때는 그럴 수가 없다.

내 모든 세포가 힘이 없어 심장도 못뛰고 폐도 가만히 있고 더이상 피가 돌지 않을 때...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배고픈 것도 잊고 정신세계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그건 현자일까?

앞으로 40년은 살아야, 아직도 현역인 우리 아버지처럼 60대도 아니고 70, 80은 되어야 늙은이의 여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

30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갈길이 멀다. 눈물이 난다.

동성애를 종교계가 반대해야하는 이유는 뭐지?

리키마틴 오프라윈프리 출연->쿠바의 해질녘뭐라는 책. 동성애자이자 작가인 레이날도 아레나스(Reynaldo Arenas) 자서전.
동성애하면 떠오르는 남미와 종교집단
남미:쿠바 책을 읽었으니 연상되는 건 당연한데
종교집단은 왜?
하도 동성애를 반대하니까.
종교계는 왜 동성애를 반대하지?
종교계의 역할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동성애는 정말 사회를 붕괴시킬까?
....
동성행위가 그렇게 사족을못쓸만큼 좋아? 극렬반대할만큼?
....


영화 : 딸기와 초콜렛, 쿠바, 구티에레스 http://gondola21.com/bbs/zboard.php?id=essa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

영화 : 줄리앙 슈나벨 2000년 '비포 나잇 폴스'

작가 : 쿠바가 낳은 최고의 소설가인 사르두이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여행

여행.

더이상 공유차원의 여행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 아니, 많은 수와 함께 하는 여행. 더이상 난 ... 본디 아웃사이더였다. 주류문화에 편승해서 열광하는, 하지만 주류가 아닌 것이 어디 있더냐. 여행이 주류가 된 이상 그래, 그 점이 내 흥미를 많이 앗아가버린 것이다. 여행이 즐겁지 않을 수는 없다. 질질 끌려가는 여행이나 출장도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닐터.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느냐 하느냐 듣느냐 느끼느냐. 이것은 여행객의 몫이다. 나는 여행객인 적이 있었다.

요근래 가장 즐거웠던 여행은 2, 3년전에 부모님과 함께 한 5월여행이었다. 시기로는 사무실에 들어앉기 직전, 부모님 입장에서는 가족계획여행이고 싶었던, 5월 초 문화의 달 행사의 달 페스티벌의 달에 보름간 했던 전국일주. 자는 것 먹는 것 숨쉬는 것 어느 하나 걱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재롱부리고 크게 웃었던 여행.

오히려 앙코르와트에서는 동반자 덕분에 매우 즐거웠지만, 심적으로는 심란했던 여행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라는 것과 여행에서 무엇을 어떻게 즐기는 것이 좋으냐 하는 점, 사진기를 가져가서 찍지 않으면 않된다는 부담감, 사진에 대한 이해못할 압박감과 중압감. 여행의 의미와 목적. 그건 동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에게 동기란? 동기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연애라거나 그런 게 아니다. 물론 그런 상대면 더 좋겠지만, 그 자리 그 위치 그 시각 그 날씨 그 곳에서 함께 하고 싶은, 함께 할 수 있을 어떤 사람이 있을 뿐이다. 캄보디아 여행은 내가 가진 동반자라는 개념을 위한 여행이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여행객은 부담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자리에서 많은 것을 두고 일어났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많은 이유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는 돈이 든다. 돈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스스로 돈을 벌고 모아서 여행을 떠난다. 자기돈이라는 것에 보람은 있겠지, 싶다. 돈을 써서 없앤다. 어째서 돈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돈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내가 현실적이라서? 돈벌지 않고 사는 부랑아가 되고 싶다.

설마, ... 내게 여행은 그저 돈을 써서 없애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한 것일까?

2010년 9월 26일 일요일

내가 아무리

자라지 않았다 주장한들, 나이는 먹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헛나이를 먹은 사람을 싫어하셨다. 책임감도 없고 등짐 짊어진 것도 없는 사람들. 사회의 적절하고 적당한 구성원이기를 거부한 사람들. 우리 아버지도 아웃사이더이셨다. 어머니를 만나 사회의 인사이더가 되셨다, 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어머니를 만나시고 나를 만나고 동생을 만나서 지켜야 할 것이 생기고 보니 사회의 구성원이지 않으면 많은 것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선택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껏 지켜져왔다. 속된 말로 공주님으로 자랐다. 공주님 위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내가 나에게 함부로 했을 때도 부모님은 함부로 다루지 않으셨고 부모님께 받은 태도며 행동들이 타인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지켜주었다. 함부로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살고자 함은 아니다. 


난 삶이 싫다.


싫어할래야 그럴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살은 내게 적절치 않다. 내게 있어 사회는 선택을 강요하는 곳이다. 돈을 택해야 하고 외면을 택해야 한다. 나를 혹은 너를 택해야 하고 여러 갈래길에서 갈팡질팡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어쩌면 부정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늘 생각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내가 나의 말을 믿지 않아서 어쩌자는 것이냐, 물어도 나는 그 말을 그 마음을 믿을 수 없다. 나는 아무런 성공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도움도 받고싶지 않다. 지금까지 받은 도움들과 배려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삶이 싫다. 그래서 나도 싫다.

오늘 읽은

두려움에 대해 적혀있는 책. 나도 두렵다, 무엇이라 한정짓지 않는 두려움이라 해도 될까. 살아있음이 두렵고 내가 나아갈 길이 두렵다. 무엇도 선택하지 않는 내가 너무 좋은 나머지 두려움에 빠졌다. 선택하고 책임짓는 두려움. 나의 선택에는 나의 책임이 뒤따른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택함을 피한 것이냐?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대답하기 곤란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아니 부정하는 것도 긍정하는 것도 결국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하고 싶었다. 학생때 이후로 자란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 내 마음은 자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