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5일 금요일

여행이 부럽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도, 부럽지가 않다. 왠지 부러워해줘야 할 것 같은데. 부럽지가 않아. 그가 그곳에 가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얻어오는지 그건 알고 싶지만, 그저 사진찍기에 급급하고 먹으러 다니고 사진포인트나 맛집을 알아오는 것은 부럽지 않다.

그랬다. 만연해있는 여행 - 특히 국내 여행은, 맛있는 것을 먹고 예쁘거나 멋진 사진을 찍는 것. 그게 전부라고 나는 오해를 하고 있다. 내가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 내일 지리산을 올라가려구요, 라디오 사연.

이건 마치, 내게 남은 건 딱 그거다. 누군가가 나 이 책을 읽었어, 라고 했을 때 나도 읽었어. 하지만 기억이 안나. 라는 것과 같다. 나도 지리산 갔다왔어. 물론 기억은 나. 하지만.. 그냥 딱 그런 느낌이야. 걷고 또 걸었지만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물집이 잡히도록 걸었지만. 노고단으로 올라갔었을거야. 그래서 장터목?에서 자고 어디선가 점심을 먹었는데, 날이 좀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가 탱탱해 보이는 30대 아저씨가 민소매 옷을 입고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걸어서 산장에 도착했어. 혼자 무언가를 먹길래 어머니가 김치를 나눠주었지. 10여걸음 떨어진 식탁에서 불을 피우던 어떤 여성일행이 있었는데, 버너를 켜다가 실수로 불을 붙여버렸어. 그러자 그 민소매 아저씨가 또 성큼성큼 가서 수건으로 불을 끄더라고. 응, 그랬지. 지리산에서 내려올 때는 너덜길로 내려왔어. 딱 우리 6~8명 일행만 너덜길을 택했었어. 그해 여름에 장마통에 난리가 나서 안그래도 험한 지름길이었는데 낙엽이 엄청 많아서 더욱더 미끄러웠어. 새벽에 올라갈 때 화장실 가까이에 있는 건물에서 라면을 끓여먹었어. 첫번째로 점심을 먹을 때는 시간이 조금 늦어서 공사중이었던 산장에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우리끼리 오붓하게 작은 컨테이너박스를 전세내서 맛있게 먹었었어. 그랬어. 난 지리산 갔다왔어. 종주를 했어. 이 모든게 생생하지만, 아니 생생한 정도는 아니고 이런저런걸 기억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하는 과장된 말버릇처럼, 나도 종주를 했어!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같은 기분따위는 들지 않는거지.

많이 걸었고, 즐겁고 힘들게 지리산 종주를 했다. 추억이기도 하고 행복이기도 하지.

내가 다닌 많은 곳,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한 많은 것들, 함께 먹은 밥 함께 마신 술. 어쩐지 눈물이 나. 부모님 생각을 하면 좀 마음이.. 애틋? 그런 느낌이 든다. 무지무지무지무지무지 감사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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